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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에서 울트라트레일러닝 선수로…미켈레 그랄리아의 1만km 달리기
슈퍼모델에서 울트라트레일러닝 선수로…미켈레 그랄리아의 1만km 달리기
  • 송희원 기자
  • 승인 2019.10.23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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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내에서 열린 ‘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대회에 일반 시민과 국내외 선수 2천700여 명이 몰렸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트레일러닝이 최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단 증거다.

트레일러닝이란 ‘트레일(trail)’과 ‘달린다(running)’의 합성어로, 산이나 초원, 숲길, 사막 등 자연 속을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울트라트레일러닝(Ultra trail running)이란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보다 더 먼 거리를 달리는 초(超)장거리 달리기를 말한다.

지난 10월 21일 국내에서 라스포르티바를 전개하는 ‘쎄로또레’에서 세계적인 울트라트레일러닝 선수인 미켈레 그랄리아(Michele Graglia·36·라스포르티바 팀)를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 태생의 전직 모델로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마라톤이라 불리는 ‘배드워터135(Badwater135)’-217km 우승을 비롯해 수많은 울트라마라톤에 참여해 줄곧 1, 2등을 해왔다.

인터뷰 중인 미켈레 그랄리아(우)와 매니저 디노 보넬리(좌)
인터뷰 중인 미켈레 그랄리아(우)와 매니저 디노 보넬리(좌)

미켈레는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법률을 전공한 그는 24살에 꽃 수출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확장으로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어느 날 사우스비치의 한 식당에 앉아있던 그를 모델 에이전트가 발견해 캐스팅했다. 그때부터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2년 후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아르마니, 캘빈클라인,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와 『W』, 『코스모폴리탄』, 『GQ』 등 세계적인 패션잡지가 찾는 슈퍼모델이 된다.

(사진)모델로 활동한 당시의 미켈라 그랄리아.
미켈레 그랄리아의 모델로 활동했던 모습.

“성취감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돈 많고 성공한 모델이었지만 저는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건 제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거든요.”

화려한 모델 생활에 공허함을 느낀 그는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2010년, 그의 나이 27살 때 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울트라마라톤 맨(Ultramarathon Man)』이라는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됐다. 거기에서 그는 울트라마라톤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 마침 그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고, 항상 모험과 탐험에 매료되어왔다. 울트라마라톤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서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울트라트레일러닝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 5개월 만에 첫 대회에 나갔다. 2011년 플로리다 ‘키스 100(Keys 100)’-160km 울트라마라톤 경기였다. 1등으로 줄곧 달리던 그는 135km쯤에서 갑자기 기절했다. 영양과 수분 섭취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고 결국 탈수 증세로 쓰러지게 된 것이다. 그는 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끝내 레이스를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6달 뒤에 ‘에버글레이즈 50(Everglades 50)’-80km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 울트라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것도 두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1등을 한 것이다. 이후로도 여러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그는 달리기에 더 집중하기 위해 2013년에 모델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울트라트레일러닝은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되는 극도의 명상법이라고 생각해요. 모델을 그만두고 러너로 성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어요. 하지만 도전했기에 마침내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죠.”

미켈레 그랄리아 인스타그램 @mickeygraglia
‘배드워터135(Badwater135)’ 결승선을 통과하는 미켈레 그랄리아. (사진: 미켈레 그랄리아 인스타그램 @mickeygraglia)

미켈레는 2018년부터 지구상의 가장 대표적인 4개 사막을 횡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가장 건조한 사막이라 불리는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의 약 1,000km를 8일 12시간 49분 만에 횡단해 기네스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뜨거운 모래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몽골 고비(Gobi) 사막 1,703km를 23일 만에 횡단해서 두 번째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내년에는 사막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아프리카 사하라(Sahara) 사막의 약 8,000km를, 2021년에는 남극대륙의 해안 끝부터 반대편 해안 끝까지 약 4,000km를 가로질러 달리는 계획을 세웠다.

“어렸을 때부터 사막 횡단을 꿈꿔왔어요. 사막을 달리려면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와 무더운 모래바람, 극심한 일교차 등 최악의 환경 조건과 매일 싸워야 해요.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막의 광대하고도 지루한 풍경은 또 어떻고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극도로 힘들지만, 이것이야말로 제가 추구해왔던 진정한 도전이죠.”

2019년 고비 사막 횡단(Gobi Desert Crossing)
2019년 고비 사막 횡단(Gobi Desert Crossing) (사진: 미켈레 그랄리아 제공)

미켈레에게 사막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물론 많이 달리는 거죠(Running a lot, of course).”

그러면서 “집중 훈련기간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250km를 달린다”며 “1년 동안 최소 4,000~5,000km를 달린다”고 덧붙인다. 이제껏 참가한 정규 레이스 완주 거리만 해도 최소 1만km가 넘었을 그. 그 절반에 가까운 거리를 그는 매년 훈련으로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켈레는 육체적인 훈련만큼이나 정신적인 훈련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가 명상이 울트라러닝에 큰 도움이 돼요. 명상 훈련을 하면 두려움과 걱정 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에게 닥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저를 목표인 결승선(finish line)에 도달하게 만들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과감히 변화를 추구하고 그 비전을 현재에도 이뤄가고 있는 미켈레 그랄리아. “모델을 그만뒀던 그때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행복은 결코 없었을 거예요”라고 단언하는 그에게서 인터뷰 내내 현재의 삶에 대한 충만한 기쁨과 감사함, 열정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4대 사막 프로젝트 그다음 목표는 무엇이냐고 묻자, “일단 내년 사하라 사막에 완주하기 위해 모든 걸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그의 매니저 디노 보넬리의 ‘무모하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종 목표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고 만다.

언젠가는 지구 한 바퀴를 조정과 러닝같이 오직 무동력만으로 돌고 싶다고.

라스포르티바 트레일러닝 앰버서더와 함께 남산을 달리고 있는 미켈레 그랄리아.
라스포르티바 트레일러닝 앰버서더와 함께 남산을 달리고 있는 미켈레 그랄리아.

 

/사진: 주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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