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4-02 12:14 (목)
[리뷰] 산의 전사들- 슬로베니아 등반사
[리뷰] 산의 전사들- 슬로베니아 등반사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 승인 2020.02.23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의 전사들』 버나데트 맥도널드지음. 김동수 옮김. 2020년 하루재 클럽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탄생한 슬로베니아의 알피니즘

『산의 전사들』은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인구 2백만 명에 불과한 작은 신생국가 슬로베니아 등반가들이 히말라야 고봉에서 활동한 뛰어난 발자취를 담아낸 책이다. 1995년 슬로베니아는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14개를 모두 완등했다. 특히 그들은 마칼루 남벽, 로체 남벽, 에베레스트 서 릉 다이렉트, 다울라기리 남벽 등 대단히 인상적인 등반을 해냈다.

그렇다면 이 작은 나라의 등반가들이 어떻게 이처럼 뛰어난 등반업적을 이루어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지극히 명료하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북서쪽에는 율리안 알프스(Julian Alps)가 있다. ‘율리안’이란 이름은 이 산맥 밑에 자치도시를 세운 줄리어스 시저로부터 왔다. 또한 북동쪽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는 카라반케 알프스(Karavanke Alps)와 캄니크 알프스(Kamnik Alps)가 있다. 또한 남쪽엔 슬로베니아의 이스트리아 지역이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해안선 인근엔 훌륭한 암장들이 산재해있다. 그 인근의 크로아티아에는 450개정도의 다양한 루트가 있는 암벽등반의 파라다이스 파크레니차(Paklenica)가 있다. 바로 이런 천혜의 환경 덕분에 슬로베니아가 히말라야는 물론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무대에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많은 등반가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고국의 사랑하는 산으로부터 길들여졌다는 점을 신앙 이상으로 인정한다.

 

슬로베니아인의 영혼 담긴 최고봉 트리글라브

슬로베니아 영토의 최고봉 트리글라브(Triglav, 2864m)는 모든 국민의 영혼이 담긴 영토주권의 상징적인 산이다.

율리안 알프스 최고봉인 이 산은 슬로베니아 인들의 영혼이 담긴 애국심의 상징인 산이다. 진정한 슬로베니아 국민이 되려면 일생에 한 번 이산에 꼭 올라야하는 것을 국민적인 의무로 여길 정도다.

장애인들도 기다시피 동료의 부측을 받으며 오르는 이 산의 정체는 무엇이며 산을 사랑하는 국민적인 열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곳의 초등은 1778년 세 명의 일행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몽블랑 초등보다 8년이나 이른 시점이었다. 1895년 슬로베니아 인들의 신성한 의무를 돕기 위해 좁고 아찔한 정상 부근의 능선이 넓혀지고 철제 케이블이 설치됐다. 이러한 국민적인 특성이 마칼루 남벽, 로체 남벽, 에베레스트 서릉 다이렉트, 다울라기리 남벽과 같이 25년 동안 히말라야 등반의 중추를 이루며 인상적인 등반을 성취했지만 세계 최강의 슬로베니아 등반가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체인구가 고작 2백만 명인 슬로베니아엔 284개 산악단체가 있고 6만 여명의 회원을 가진 등산연합이 1893년에 창립 된 것만 보아도 그 나라의 등산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

토모 체센, 마르코 프레젤, 실보 카로, 안드레이 슈트렘펠, 토마주 휴마르, 알레시쿠나베르 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요 등반가 18명을 중심으로 슬로베니아의 등반역사를 조명한다. 슬로베니아에는 훌륭한 등반을 했음에도 우리들이 모르고 지냈던 탁월한 등반가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등반가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이야기는 영웅적인 부분들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산악인들의 일반적인 역사에서 중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조명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모든 산악인들이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슬로베니아의 알피니즘을 잘 요약했다.

『산의 전사들』은 슬로베니아의 위대한 등반가이자 작가인 네이츠 자플로니크의 시각으로 들여다 본 슬로베니아 알피니즘의 역동적인 한 시대를 저자인 맥도널드가 조명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버나데트 맥도널드는 캐나다 국적의 산악문학 작가로 『엘리자베스 홀리-히말라야의 영원한 등반 기록가』(2016년, 하루재)와 『프리덤 클라이머스』(2017년, 하루재)로 한국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도 암벽등반과 스키를 즐기며 2016년엔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한국산서회 명예회원이다.

 

첫 시험무대 트리술

슬로베니아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라는 무대에 처음 출사표를 던진 것은 1956년의 마나슬루(8,162m)였다. 그러나 그들의 원정 계획은 정부의 지원이 줄어드는 바람에 끝났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60년 그들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인도 제2의 고봉 난다데비(Nanda Devi, 7,816m)에 시선을 집중했으나 이 산마저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주로 슬로베니아 산악인들로 구성된 그 팀의 배가 인도양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인도 정부에서 등반허가를 취소한다는 무전을 보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인근에 있는 트리술(Trisul, 7,120m)을 제안했다. 대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히말라야로 가는 그들 첫 원정대원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리라 결심했다. 이제 트리술은 그들의 시험 무대가 되었다. 그들은 트리술 1봉에서 폭풍우에 쫓겨 패퇴했지만 2봉과 3봉 두 개봉 초등으로 특별한 보상을 받았다. 1907년에 영국인 롱스터프에 의해 초등된 트리술은 그때까지 인류가 오른 최고의 고도 기록이다.

 

마칼루 남벽

1975년은 히말라야의 거대한 두 벽에서 동시에 역사가 만들어졌다. 영국 보닝턴 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슬로베니아 원정대의 마칼루 남벽 초등정이다.

슬로베니아의 슈라우프와 마리얀 만프레다(무산소 등정)가 슬로베니아 최초로 지구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마칼루 정상에 섰다. 두 사람은 슬로베니아 최초의 8000m 등정자가 되었지만 만프레다는 발가락을 잃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해 슬로베니아는 7명의 대원이 정상을 밟고 몇몇이 동상에 걸렸지만 모두가 살아 돌아왔다.

 

1979년 에베레스트 서릉 다이렉트

마칼루 남벽을 등반한 슬로베니아 팀이 에베레스트를 노멀 루트로 올라간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에베레스트 서릉은 미등인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979년의 슬로베니아 원정대는 대규모였다. 700명의 포터, 18톤의 짐, 25명의 대원들 모두는 의기양양했다. 그들은 윈치를 설치하고 짐을 끌어 올렸다. 그들은 8120m에 5캠프를 설치, 대략 8300m지점의 난이도 5급의 침니를 장갑을 벗은 채 맨손으로 올라 고정로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마리얀 만프레다의 대담한 선등이 루트를 연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루트를 뚫고 산소도 장갑도 없이 크럭스 침니를 등반하고 동료들을 위해 고정로프를 설치했던 그는 에베레스트에서 손가락을 잃었고, 마칼루 남벽에서 발가락을 바쳤다.

이후 네이츠와 안드레이 두 사람은 몇 번의 추락과 거센 바람을 뚫고 서릉 다이렉트를 통해 마침내 루트 초등에 성공한다. 네이츠가 정상에서 베이스캠프와 교신한 내용은 꽤나 여유롭고 외설스럽다.

베이스캠프: 씨팔... 오, 신이시여! 놀랍네! 건배!

네이츠: 우리가 그녀(하늘의 여신 에베레스트) 위에 있다는 거 알아요? 신성한 여신!

우리는 씹할 놈들입니다!

베이스캠프: 그래, 씨팔! 자, 자, 이젠 그만 얘기해!

이후 세 사람이 정상에 올랐지만 베이스캠프로 하산 중 셰르파 앙프가 설사면에서 추락하면서 자기제동 실패로 사망했다. 그러나 1979년의 에베레스트는 대성공이었다. 서릉에서의 승리는 대단한 성과였다. 초등 이후 재등을 노리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어려운 곳이었다. 1984년에 불가리아 팀이 두 번째 등정에 성공했지만 정상 등정자가 하산도중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슬로베니아(유고슬라비아) 팀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로체남벽의 가장 큰 업적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다”

슬로베니아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가공할만한 로체 남벽을 1962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세계 4위 고봉 로체는 1956년 스위스 팀이 서쪽사면으로 초등한 이후 1988년엔 자이언트 14개를 완등한 비엘리츠키에 의해 동계초등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남쪽은 전혀 다르다. 폭 2250m, 높이 3200m인 로체남벽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파른 벽이다.

1981년 알레시외 21명의 로체 남벽 팀은 쟁쟁한 산악인들로 구성했다. 이중 유명 암벽등반가 프란체크도 팀의 중요 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남벽에 매료되었다.

등반대원 모두가 남벽 도전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으나 날마다 계속되는 눈사태의 맹위에 살아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남벽에서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는 기회는 하루에 고작 4시간 정도였다. 늘 폭풍설이 몰아닥쳐 베이스캠프까지 벽 전체를 쓸어내리는 눈, 얼음, 바위의 위력은 포탄사격 연습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들은 설동을 파서 은신처를 마련하며 전진했고, 6캠프를 설치하는데 가장 위험한 상황 속에서 7주간의 고된 작업을 하며 벽에서 30일을 보낼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60일이 지나고 있었다. 대원 중 슈트렘펠은 8,250m지점에서 엉성한 눈이 달라붙은 바위를 장갑을 벗은 채 맨손으로 등반하기도 했다. 첫눈에 로체남벽에 감명을 받아 전의를 불태우던 프란체크마저 이 벽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여기서 장엄한 벽을 바라보면 어쩔 수 없이 왜소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거의 두 달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등반을 했지만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 슬로베니아 팀은 로체 남벽에서의 64일 중 오직 4일 동안만 좋은 날씨를 만났고 대원들의 힘은 모두 고갈되었다. 대장 알렉시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고국으로 보냈다. “벽은 정복했지만 정상등정은 실패했다. 곧 귀국하겠다.”

그들이 로체 남벽에서 정상능선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룩한 것은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체 남벽과 관련해서는 등반역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토모 체센(Tomo Cesen)의 단독등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등반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89년 그는 7,000m급의 고산에서 5.10급의 자유등반 크럭스를 통과하는 자누(Jannu, 7,710m)북벽을 단독으로 23시간 등반 후 정상에 도달했다. 그것은 히말라야에서 그때까지 행해진 가장 어려운 단독등정이었다.

1990년엔 로체 남벽을 단독으로 올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등정의 진위를 놓고 이론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마르코 프레젤은 나는 체센을 믿는다고 확신에 찬 말을 했다. “사진이 진정한 증빙은 아니다 어떤 걸 속이고자한다면 포토샵으로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체센이 등정을 했다는 증거가 없을지 모르지만, 등정을 하지 못했단 증거도 없다. 메스너의 낭가파르바트 등정, 율리스텍의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등 많은 기념비적 등반도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4,000m의 벽 다울라기리 남벽

세계 7위의 고봉 다울라기리의 4,000m가 넘는 남벽은 등반에 따른 기술적인 특성과 위험 때문에 1985년까지 미등으로 남아있었다. 슬로베니아는 1985년부터 3년 연속원정을 추진했고 1987년 늦가을의 마지막 원정에서는 12월 4일 해가 떨어질 무렵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다. 비록 공식적인 동계등반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 산을 동계의 조건 속에서 올랐다. 히말라야 동계등반은 12월 21일부터 시작되지만 그들의 등정은 동계의 기상조건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히말라야 등반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으나 외부에 덜 알려진 슬로베니아라는 작은 나라 알피니스트들이 거둔 뛰어난 성취에 대한 기록들을 요약했다.

히말라야 등반역사를 요약해보면 1950년대는 낭가파르바트, 초오유, 가셔브룸 2봉, 브로드피크, 다울라기리 등 8000m 고봉 5개를 초등한 오스트리아인들이 이끌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일본인들이 몰려들었고, 영국인들은 어려운 벽과 능선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앞세웠으며 1980년대는 폴란드인들이 신루트와 동계등반 그리고 과감한 알파인스타일 등반으로 히말라야를 지배했다. 다음엔 러시아인들이 상상을 뛰어 넘는 대담한 등반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인들은 난이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유고슬라비아와 슬로베니아의 등반이 특별한 것은 8000m 초등이라는 히말라야 등반의 황금기에서는 빠져있었지만 1970~80년대엔 거대한 벽과 능선에서 뒤쳐진 것을 만회하는 황금기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룩한 성취는 히말라야 등반의 정점을 장식했다. 마칼루 남벽, 에베레스트 서릉, 초오유 북벽, 칸첸중가 남쪽 필라, 자누 북벽, 멜룽체, 아마다블람 북서벽, 눕체 서벽, 바기라티3봉 서벽, 시샤팡마 남서벽, 아피 남동벽, 보바예 북서벽, 남파 남벽, 갸충캉 북벽, 다울라기리 남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라인홀드 메스너가 펴낸 『더 빅 월스(The Big Walls)』(1978)를 보면 현대등산은 영국인과 중부 유럽의 것이고, 창조력에서 모든 것을 한 단계 발전시킨 사람들은 슬로베니아 산악인들이라고 평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서릉 다이렉트 등반은 메스너가 평한 것처럼 에베레스트 등반역사상 가장 어려운 등반이었지만 슬로베니아의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등반이었다.

유럽 동남부 발칸 반도에 위치한 슬로베니아는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 전라도만 하고 인구는 200만 명 남짓한 소국이다. 이런 작은 나라가 히말라야라는 광대한 무대에서 세계 등반사를 주도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들이 이룩한 슬로베니아 알피니즘의 속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한국 독자들에겐 하나의 축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