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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의 높이와 척도
[칼럼] 산의 높이와 척도
  • 마운틴저널
  • 승인 2020.03.2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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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파키스탄 카라코람.

폴란드 산악인 보이텍 쿠르티카와 그의 파트너인 오스트리아 산악인 로버트 샤우어는 가셔브룸4봉 서벽, 일명 ‘빛나는 벽’ 위에서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바위구간을 돌파하기 위해 며칠째 씨름하고 있었다.

바위에 비친 석양이 빛의 잔물결을 튕겨내듯 신기루처럼 퍼져나가는 가운데, 위태롭게 박힌 피톤에 매달린 그들의 아래로 로프가 길게 떠다녔다. 바람에 날려 쌓인 눈더미들은 눈사태가 되어 반짝이며 허공을 갈랐다.

그들이 빛나는 벽의 정상부로 향하던 그 순간의 동작들을 두고 쿠르티카의 전기를 쓴 산악문학 작가 베나데트 맥도날드는 “무한대로 향하는 발걸음”이라고 묘사했다.

쿠르티카는 계속 정상으로 간다면 둘다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추위와 고립, 허기와 탈수, 저산소증에 지친 두 사람은 신기루 같은 안개를 헤치며 하강을 시작했다. 알수 없는 제3자의 그림자와 보이지 않는 새의 울음소리, 이상한 음악소리가 그들의 눈과 귀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 후, 쿠르티카는 자신들이 산의 정점을 밟지 않았기 때문에 빛나는 벽은 초등된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쿠르티카는 정상을 포기한 그 등반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이었다.

맥도날드는 앞선 책 『자유의 예술(Art of Freedom)』에서 “쿠르티카는 자신의 뇌 속에 극한의 상황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외진 구석들이 있다고 확신했다”며 “그에게 가셔브룸4봉 등반이 이런 비밀의 장소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적었다.

가셔브룸4봉 서벽 등반 십수 년 뒤 쿠르티카는 『알피니스트』 2호에서 “이상하게도 산악계는 정상에 이르지 못한 나의 등반을 완결된 작품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알피니즘이 스포츠라기보다 예술이라는 명백한 암시를 뜻한다. 예술에서는 빠진 고리 하나가 그 작품의 의미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셔브룸4봉 등반을 두고 ‘세기의 등반’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쿠르티카는 “시 한편을 두고 ‘세기의 시’라고 선언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7925미터의 가셔브룸4봉은 고정로프가 길게 뻗어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탈을 밟고 서있으며 버려진 산소통들이 때로 눈 위의 이정표가 되는, 이른바 정상 컬렉터들이 모여드는 8000미터 산보다 약간 낮을 뿐이다.

이러한 노멀 루트를 통한 정상 수집(peakbagging)의 과정에서 등정을 입증하는 것은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즉 여기에는 등반자의 정신적 경험에 대한 척도란 없다.

하지만 에베르하르트 쥬갈스키(Eberhard Jurgalski), 로돌페 포피에르(Rodolphe Popier), 토바이어스 펜텔(Tobias Pantel)을 포함한 국제 연구팀이 수년간 정상 수집가들의 등정 사진과 위성 사진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마나슬루, 안나푸르나1봉, 다울라기리 등 8000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했다고 발표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 정점에 서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때로 단순한 실수로, 또는 정상처럼 보이는 낮은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곤 한 것이다.

쥬갈스키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인 ‘8000ers.com’에서는 펜텔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지루한 정상 지형’이라고 표현한 마나슬루 정상부는 능선이 오르내리며 굽이져 있으며 앞선 90도 절벽에 가려 진짜 정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면 정상은 주로 바위지대로, 하늘을 배경으로 바삭바삭해 보이는 실루엣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여름철 몬순 시기의 바람과 무거운 비구름이 능선을 따라 거친 커니스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는 정상까지 가는 데에 위험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최근 가을 시즌 많은 상업등반대들이 정상 직전에서 등반을 끝냈다.

포피에르의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안나푸르나1봉의 거대한 정상 능선의 위성사진에는 수많은 돌기들이 보이는데, 그중 가장 낮은 것은 가장 높은 곳보다 26.8미터 아래에 있다.

다울라기리1봉 또한 이와 비슷하게 혼란스러운 정상 풍경을 보여주며, 엉뚱한 곳에 꽂혀있는 금속 막대기를 확인할 수 있다.

쥬갈스키는 이른바 ‘관용 구역(tolerance zone)’을 이야기하며, 불분명한 정상에 오른 이러한 산악인들에 대해서는 정점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 또는 진짜 정상에 도달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엘리트 리스트(elite list)’를 기준으로 등정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쥬갈스키는 부정확한 등정들에 대한 주장을 감안하면 모든 8000미터 등정자들의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난 10년간 세계의 유명 산들을 오른 상업등반대의 고객들과 경험 많은 알피니스트들의 등정이 실제로 어땠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탐험의 역사란 오류와 근사치, 그리고 신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도의 많은 부분들이 은유적인 표현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잊기 쉽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도 종종 다차원적인 장소들을 평평하고 전통적인 상징으로만 표현하고 있다.

산이라는 보편적인 이름을 얻기 위해서 지형이 얼마나 높고, 가파르고, 자연스러워야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동의한 지도 제작자는 찾기 힘들다. 그곳의 고도와 명성은 기후와 지형 및 문화에 따라 변화가기 때문이다. 쥬갈스키는 ‘8000ers.com’에서 다양한 지리학자들이 이룩한, 산이라는 것에 대한 계산의 역사를 나열하며 자신의 정교한 시스템도 이야기하고 있다.

 

 

대단히 광범위하다.

로데릭 피티는 1936년 '산악지리학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이란 대중적인 상상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산이다. 대중들이 산이라 상상하는 그곳은 언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니거나 혹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그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산이라는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지난 수백 년간 산의 높이는 어떤 형태로도 정확히 정량화되지 않아왔다. 오랫동안 종교와 문학에서 산의 정상이란 하늘을 찌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9세기 중국 시인 백거이는 자신의 북경 향로봉(557m) 등정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한계” “우주의 광대함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 묘사했다.

초기의 지도 제작자들은 전 세계에 비현실적인 고도를 기록했다. 17세기 후반 독일 지리학자 베른하르투스 바레니우스는 카나리아 제도의 피코 델 티드(3718m) 산이 11826미터(38800피트)나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즈음 기압계가 발명되고 더 정확한 고도를 측정하는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스위스 지리학자 버다드 데바르비유와 길레스 루다즈가 『산, 정치의 역사(The Mountain: A Political History)』에서 설명했듯 기압계를 이용한 기술은 “전 세계 모든 산들의 체계적인 측정”을 시도할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결과 ‘알프스 4000미터 이상,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이라는 특정 한계점 이상의 최고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산이란 여전히 숫자 체계로만 정의하기엔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다. 산의 숭고함과 낭만적인 이론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너머의 불가사의한 매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지역으로서 정상의 의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베로니카 델라 도라 런던대 교수는 높은 산에서의 ‘이상한 역설’을 관찰했다. 자연과 문화의 면에서 그곳의 사람들은 국한된 공간에 살고 유한하지만, 한편으로 무한하고, 영원하며,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방랑자들은 산의 꼭대기가 아닌 산의 다른 곳들을 찾아 나섰다. 순례자들은 성지로 가는 길에 알파인 지대를 지나고, 승려들은 샹그릴라를 찾아 히말라야 산맥을 여행했으며 산악인들은 현지의 종교적 관습을 존중하기 위해 성봉 정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이른바 ‘레크리에이션 산악인’들이 각 지역에서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은 정상에 서는 행위가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한 도전의 과정에서 최종 목적이 아닌 부차적인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즉, 더욱 도전적인 루트를 통해서든 아니면 더욱 미니멀리즘적인 스타일에 의해서든 말이다.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산악계에서는 새로운 알파인 루트가 그 완성을 위해 정상까지 이어져야하는지, 아니면 의미 있는 포인트까지 만으로도 충분한 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곳은 산의 정상이라고 해도 될 만한 곳이거나 이미 등반되었던 능선과의 교차점 또는 종종 언급되었던 ‘기술적인 어려움의 끝’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국 산악인 잭 로버츠는 1997년 미국산악회 연감(AAJ)에서 ‘등정’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적었다.

“등반이라는 것에 가능한 많은 것들을 주는 독특한 느낌, 그리고 하늘을 제외한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절대적’ 장소에 서있는 것.”

한편 다른 산악인들은 환경적인 이유나 철학적인 이유로 정상에 대한 집착에서 멀어져갔다.

태평양 북서부의 작가 하비 매닝은 산악인들이 오직 산정의 눈과 바위만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고, 반면 계곡의 무성한 아름드리 나무들은 벌목에 굴복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그는 1965년 자신의 책 『야생의 캐스캐이드:잊혀진 파크랜드』에서 “그들이 한때 정상을 수집했던 것처럼 이제는 협곡과 콜(col)과 강과 숲을 수집할 것이다. 모든 관점은 새로운 경험”이라며 산의 전체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산악인들을 칭찬했었다.

스코틀랜드의 고전 『살아 있는 산(The living mountain)』을 쓴 자연주의 작가 난 셰퍼드는 케언곰 산맥의 고원 전체가 ‘진정한 정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눈의 결정체와 얼음, 석영, 나뭇잎과 꽃잎의 맥들, 산 능선의 굴곡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선, 각각의 빛이 부딪치는 언덕과 그늘진 틈새까지, ‘산의 모든 것’을 마주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형태의 산행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며 “다른 감각이 있다면 알아야 할 것이 또 있다. 알아야 할 것은 아는 것과 함께 커진다”고 했다.

 

 

지난 2019년 12월 쥬갈스키는 나에게 마나슬루, 안나푸르나1봉, 다울라기리1봉의 정상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와 동료들의 연구 작업은 아직 미결로 남아있다.

우리의 시대에서 전통적인 저널리즘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반면, 기존의 광고와 브랜드의 이야기는 번창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도 꾸며진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자신의 등정을 알리며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은 암묵적이거나 명백하게 자신들이 해온 주장을 의심케하는 어떤 뉴스라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독자나 관객들은 세계적인 정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세상에서 등산의 기록을 수정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쥬갈스키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구체적인 탐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발표함에 따라, 여론이 모일 수 있고 논쟁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등정자 목록에 별표나 각주를 달 수도 있고, 산악인들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다고 느끼는 자신의 등반을 완료하기 위해 산으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 무대의 새로운 지원자들은 8000미터 등정에 있어 실제 허용치에 포함되는 범주의 첫 번째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스토리텔러와 독자들은 진실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란 그 자체로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실하고 실제적인 무언가에 대해 다시 연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쉽게 사라지는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쥬갈스키는 “이것은 역사”라며 “왜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등반의 계획에 있어 기존의 지배적이었던 방법들이 틀렸다는 인식이 늘어나며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문제란 정상이라는 특정한 장소 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산』에서 셰퍼드는 알파인 신기루와 지형적인 착시현상에 대해 “사물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인 시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한히 많은 수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썼다.

2019년 켄달 마운틴 페스티벌에서 연사와 관객들은 첨단의 등반을 이야기하며 그 판단 기준으로 곤란함, 헌신, 스타일 등 공통적 수단으로서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제 적절하지 않다고 논의했다. 그들은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에서 탄소발자국의 측정도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미래에 찬사를 받을 등반이란 알피니스트들의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행해지는, 또 가장 적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익스페디션'이란 콜 테일러의 두 번째 ‘데블스 섬’ 북쪽 필라 등반과 유사할 수 있다. 2017년 그는 항공기를 이용하는 대신 워싱턴 포트 해드록에서 알래스카의 베어드 빙하까지 홀로 항해한 뒤 복잡한 크레바스 지역을 따라 산기슭까지 걸어갔다.

우리는 저마다 인간 활동의 무게가 예리하게 느껴지는 위태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은 더 이상 알피니즘을 순수하고 순진한 행위로 상상하거나, 그것을 무상의 행위로 칭송하는 것이 입맛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등산을 연구하는 학자인 암리타 다르의 논평처럼, 우리는 산악인들과 산의 정상 또한 “넓은 세계에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잘 안다.

어떤 등반에 대한 평가란 다르가 제안한 것처럼 환경에 대한 영향과 누가 로프를 고정했는지, 또 장비를 만든 사람의 노동까지도 포함되어야한다. 또한 등반이란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일을 시작한다는” 잠재력까지도 지니고 있어야한다.

아마도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등반이란 그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또 다른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질 무렵, ‘빛나는 벽’의 얼어붙은 바위는 여전히 차가운 유리 뒤에서 촛불처럼 타고 있었다.

마이클 케네디는 이것을 “완벽한 찰나”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정의되지 않은 것들을 들추는 일이었다.

쿠르티카는 자신이 개척한 위대한 길을 불완전하다고 묘사함으로써 상상을 뛰어넘는 훨씬 더 경이로운 등반의 가능성을 환기시켰다.

아마도 그가 언급했던 은유에 따라 우리는 등반을 시 한편이 만들어내는 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을 위해 최고의 정직성을 요구하지만 여전히 숫자나 단어로만은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상태와도 같은, 마치 얼음과 눈 위에 내고자하는 우리의 궤적이 얕은 선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지듯.

쿠르티카는 인터뷰에서 신비롭지만 본질적인 목표를 말했다.

“나의 인생에 있어 한 가지 역할을 생각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 되는 것”이라고.

 

*이 글은 『Alpinist』 69호에 실린 편집장 케이트 이브스(Kate Ives)의 칼럼 ‘The measure of a mountain’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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