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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암벽의 여왕, 카트린 데스티벨
[신간 리뷰] 암벽의 여왕, 카트린 데스티벨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20.05.13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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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의 여왕(Rock Queen) 카트린 데스티벨 지음. 김동수 옮김. 하루재클럽

이 책은 암벽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세계최고 여성등반가 카트린 데스티벨(Cathrine Destivelle 1960~)의 자서전이다.

1960년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Oran)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성장한 그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 가족끼리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으로 피크닉을 갈 때면 사암의 바위를 오르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것이 그녀를 클라이밍의 세계로 입문케 하는 첫 동기가 되었다.

그녀는 1985년 산악계에 두각을 나타낸 이래 대중적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등반을 해오며 세계 최고의 전천후 여성 클라이머로 성장했다. 스포츠클라이밍, 암벽등반, 알파인등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올라운드 등반가로 성장하며 여성도 등반분야의 상위권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1988년 스노버드 암벽 대회에서 유럽과 아메리카 두 대륙을 대표하는 2명의 히로인이 우승을 놓고 자웅을 겨룬다. 결과는 속도경기에서 이긴 데스티벨이 차지했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이후 데스티벨의 경쟁 상대였던 린힐은 엘캡(El Capitan)의 노즈(Nose)에서 자유등반에 성공한다. 그녀의 자유등반은 워렌 하딩의 초등 이후 36년이 지난 1994년에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자유등반이었다.

데스티벨은 ‘바위의 발레리나’로 불리며 1980년대에 8개의 주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를 주름잡으며 세계챔피언에 여러 번 등극했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았다. 1999년에는 돌로미테의 치마 그란데 북벽 직등 루트도 단독으로 올랐다.

그녀는 1990년 여성 최초로 트랑고 타워(Trango Tower)를 원정한다. 네임리스 타워(Nameless Tower, 6239m)의 유고슬라비아 루트 자유등반은 그녀가 경험한 알파인 거벽등반의 첫 해외원정이었다.

제프 로우(Jeff Lowe, 이하 로우)와 함께한 트랑고 등반은 그녀에게 큰 자신감을 안겨주었으며 드디어 알프스 드류 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만들게 했다. 이런 그녀에게 용기와 격려, 거벽등반기술의 전수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 미국의 유명 등반가 로우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드류 등반에 ‘노(No)’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로우만은 “당신은 할 수 있어”라고 명쾌한 답을 주기도 했다. 그녀의 전환점은 로우를 알게 되면서부터 더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늘 일깨워 주었고 실제로 트랑고 타워 등반을 통해 확인시켜 주었다. 로우 덕분에 벽에서 비박하는 방법이라든가, 고정로프를 타고 오르는 기술이라든가, 장비와 옷을 고르는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1988년 미국의 스노버드 대회에서 로우를 처음 만나 트랑고 타워를 함께 등반했으며 이후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이룩한 대단한 등반 뒤에는 늘 로우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드류 등반을 준비할 때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제프 로우와 함께 유타의 붉은 사암거벽에서 인공등반 기술과 포탈레지 사용방법을 배웠다. 아이거 동계 단독등반을 준비할 때도 빙벽등반의 최고 고수인 로우를 만나러 미국으로 가서 콜로라도와 캐나다 로키의 위핑 월(Whipping wall)등 빙벽을 오르며 등반기술을 배웠다. 그녀는 로우의 가르침 덕분에 실력이 빠르게 향상됐다. 아이거 동계등반 때 로우는 북벽으로 출발하려는 그녀에게 “가! 난 널 믿어. 넌 성공할 거야”라고 격려의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기쁨과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로우는 정상에서 비박을 하며 그녀가 무사히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하산한다. 당시 로우는 부인과 막 이혼했고 자신의 사업이 부도를 맞고 부채에 대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그 전해 겨울에 아이거 북벽에서 동계 단독등반을 하며 새로운 루트(메타노이아)를 개척할 때 데스티벨은 그린델발트까지 찾아와서 그를 도왔다. 세간에서는 그의 단독등반이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가 드류(Dru) 서벽 단독등정에 성공한 것은 1955년이다. 그는 30kg의 짐을 끌어올리며 6일 동안 사투를 벌였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등산 역사상 가장 탁월한 업적 하나를 이루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1990년 가을 보나티가 6일에 걸쳐 등반한 루트를 데스티벨은 로프나 피톤 없이 작은 배낭에 옷과 물통만 넣고 단 4시간 20분 만에 단독 자유등반으로 승리를 거두어 세상을 놀라게 한다.

보나티는 난공불락의 드류를 올라 전설이 되었고 데스티벨은 4시간이라는 기록으로 그 신화를 깨뜨렸다.

당시 언론은 그녀와 보나티의 등반을 비교했지만 그녀는 초등자와 재등자의 등반을 비교한 언론의 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단지 그곳을 단독 등반한 첫 여성일 뿐이라고 했다.

새 루트를 개척할 때의 어려움을 경험하기 위해 1991년 그녀 자신이 직접 드류 서벽에 A3~A4급의 난이도 높은 신루트를 연다. 그리고 11일 동안 단독으로 개척한 드류 서벽에 자신의 이름 하나를 추가한다. 그녀는 등반이 끝난 뒤 “나도 보나티처럼 그걸 등반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단독으로 개척했다”고 말했다.

1000m의 화강암벽 드류를 오르기 위한 준비는 철저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의 붉은 사암에서 제프 로우로부터 인공등반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80kg이 넘는 장비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소설 한 권과 무전기를 휴대했으며, 600여m의 벽을 완등하기 위해 여러 날을 바위에 매달려 지내야 했다.

그녀가 개척한 ‘데스티벨 루트’는 여성도 첨예적인 등반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과거 대부분의 여성등반가들은 남성이 개척한 루트를 재등하는데 만족했지만 그녀가 남긴 루트는 여성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등반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시대가 되었음을 선포한 등반이었다. 그녀가 등반을 끝내고 하산했을 때 한 저널리스트는 그의 초등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진작 포기했을지 모르는 중요한 등반을 해낸 데스티벨이라는 이 여성은 도대체 누구인가?”

1992년 알프스 3대 북벽인 아이거(Eiger) 북벽 동계단독등반은 사람들이 이미 예상했던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했다. 17시간 만에 그곳을 올랐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 언론은 그녀의 성공을 다음과 같은 머리기사로 장식했다.

“데스티벨,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케이오(KO)시키다” “데스티벨, 공포의 아이거북벽을 길들인 최초의 여성” “데스티벨이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집어 삼키다”

아이거 북벽은 모든 등반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 독일어로 ‘살인(Mord)’을 의미하는 아이거 모르트 반트(Eiger Mord Want) 즉 ‘아이거 살인 벽’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1993년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 북벽, 1994년 마터호른(Matterhorn) 북벽 동계 단독등반은 보나티에 이어 2등을 기록한 등반이었다. 이로써 그녀는 알프스 3대 북벽에 동계여성단독초등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밖에도 그녀는 많은 단독등반을 해냈다. 1993년 마칼루(Makalu)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시샤팡마(Shishapangma) 남서벽, 1994년 안나푸르나(Annapurna) 남벽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로우와 함께 라톡1봉(7145m)도 시도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남극의 ‘피크4111’ 초등 시 그녀는 정상에서 추락, 다리부상을 입고 천신만고 끝에 생환한다. 당시 그녀의 구조를 도운 사람들은 “살아난 건 기적이야. 지옥에서 돌아온 거니까”라고 말했다. 그녀는 당시의 생환과정을 오거(Ogre, 7285m)에서 늑골과 다리골절상을 입고 기어 내려오는 더그 스코트와 보닝턴의 목숨을 건 탈출과정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책을 포함해 9권의 책을 썼으며, 10개의 주요 등반영상에 출연했다. 이 책의 영어판 제목 『록 퀸(Rock Queen)』은 1997년 그녀가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영국 펜트랜드 만에 솟아있는 137m의 사암 돌기둥 올드 맨 오브 호이(Old Man of Hoy)”를 오르며 찍은 영상물에 붙여진 제목으로 이 자서전의 제목이 되었다.

산악문화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그녀는 현재 ‘몽블랑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그녀의 작은 체구는 대중적인 인기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이런 인기 때문에 프랑스 장비업체들은 그녀를 광고 모델로 활용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풀어놓는 이 책은 2016년 밴프 북 페스티벌 등산사 부문의 수상작으로 그녀가 왜 유명해졌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데스티벨은 2020년 가을 제5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산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온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은 한국 독자들에겐 하나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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