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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16곡과 히말라야 14개봉
베토벤의 16곡과 히말라야 14개봉
  • 박성용 편집위원
  • 승인 2018.03.05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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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라는 거봉이 쌓아올린 현악사중주 16곡
후배 음악가들은 왜 '숫자'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베토벤. 사진 Fliker
누구나 알고 있는 베토벤. 사진 Fliker

고전음악 장르에 현악사중주가 있다. 제1·2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 4개의 현악기로 구성된다. 크기와 음역이 다를 뿐 똑같은 마찰음을 내는 현악사중주는 음의 확장성과 집중력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내악이다. 연주 또한 단원들의 고른 기량과 일치된 호흡이 뒷받침되어야 본전을 건질 수 있는 까다로운 영역이기도 하다.

현악사중주 장르는 하이든·모차르트에서 산맥이 형성돼 베토벤이라는 거봉이 솟아난다. 베토벤은 모두 16곡(대푸가 포함)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 이 16곡은 작곡 시기에 따라 초기·중기·후기로 구분하는데, 마지막 16번이 베토벤 최후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베토벤은 평생을 현악사중주에 매달린 셈이다.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끝내고 나서 그는 다시 현악사중주로 눈을 돌려 심오한 후기 작품들을 쏟아냈다. 베토벤의 자유로운 사상과 음악관을 표현하는데 현악사중주만한 장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간 <합창교향곡>을 발표해 당대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고,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내용과 형식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상태였다. 그 기세에 눌린 것인지 베토벤 사후에는 이를 뛰어넘는 현악사중주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후대의 작곡가들은 베토벤이 남긴 업적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분량이나 음악적 성취도에서는 한 수 밀렸다. 슈베르트(15곡), 슈만(3곡), 브람스(3곡)에 이어 드보르작(15곡), 바르토크(6곡), 쇼스타코비치(15곡) 등이 명맥을 이어갔지만 현악사중주는 쓸쓸한 쇠퇴기를 맞이한다.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이 1958~1961년에 걸쳐 녹음한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음반. 인류 최초의 스테레오 레코딩이자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이 1958~1961년에 걸쳐 녹음한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음반. 인류 최초의 스테레오 레코딩이자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6곡을 들을 때마다 히말라야의 8000미터급 고봉들이 떠오르는 건 비약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베토벤이 쌓은 저 16개의 고봉들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언젠가 뛰어넘어야 할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아쉽게도 다들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이를 히말라야 원정의 개념으로 바꿔 생각하면 개수(노멀 루트)나 완성도(신루트 개척) 등에서 베토벤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가 산술적인 욕심을 부렸으면 16곡을 넘어설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억지이자 집착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런 깨달음 덕분에 서양음악은 천년 동안 이어진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무조음악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13년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은 이를 세계에 알린 강렬한 메시지였다.

세계 최초로 14개봉을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 4개의 동계 초등정과 5개의 신루트 등정 기록을 세운 예지 쿠쿠츠카 이후의 14개봉 완등 경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8000미터급 고봉 원정에서 고산거벽으로 눈을 돌린 산악인들이 이룩한 성과는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로 베토벤의 명곡을 감상해보자. 현악사중주 제 14번 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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